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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제1경 - 미륵사지>

미륵사지는 마한(馬韓)의 옛 도읍지로 추정되기도 하는 금마면 용화산(龍華山)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다. 

601년(백제 무왕 2)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무왕(武王)과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설화로 유명한 사찰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동양 최대 석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으며, 1974년 8월 원광대학교에서 실시한 발굴조사 때 동탑지(東塔址)도 발견되었다. 건물지(建物址)는 백제와 고구려의 유구(遺構)가 복합되어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미륵사터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제30대 무왕 관련 불탑이다.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미륵삼존을 모시기 위해 창건된 백제 최대의 사찰로, 서원 금당 앞에 있는 이 석탑도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 석탑 중 제일 규모가 크고 오래된 탑이며, 목탑의 구조를 석탑으로 재현하였다. 무너져서 거의 절반 정도만 남은 탑을 2009년 해체·수리하다가 완전한 형태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같이 발견된 탑지에서 왕비가 639년(무왕 40)에 탑을 건립하면서 사리를 봉안했음이 확인되었다.

동원 구층석탑은 1992년 복원한 화강석 석탑으로 탑의 높이는 27.8m이다. 동원탑지 발굴로 기단석, 옥개석, 노반석이 출토되면서 복원작업이 이루어졌다

백제 무왕 당시 최대 사찰로 알려진 미륵사는 3탑 3금당 가람배치로 금당(중금당, 동금당, 서금당) 앞에 각각 탑이 세워졌었는데 현재는 서금당 앞의 서탑만 전해진다.

동원 구층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서탑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통해 고증, 복원되었으며, 2층 기단에 9층의 탑신부와 상륜부로 이루어져있다. 지붕돌 모서리에는 풍탁이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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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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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는 마한(馬韓)의 옛 도읍지로 추정되기도 하는 금마면 용화산(龍華山)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다. 

601년(백제 무왕 2)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무왕(武王)과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설화로 유명한 사찰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동양 최대 석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으며, 1974년 8월 원광대학교에서 실시한 발굴조사 때 동탑지(東塔址)도 발견되었다. 건물지(建物址)는 백제와 고구려의 유구(遺構)가 복합되어 있다.

 

 

 

 

 

 

 

 

익산 미륵산은 금마면, 삼기면, 낭산면에 걸쳐 있는 높이 430m의 산이다. 옛날에는 이산의 동쪽에 이어져 있는 높이 350m 정도의 낮은 산봉까지를 포함하여 용화산이라 불렀으나 지금은 구분하여 미륵사지가 있는 북쪽은 미륵산이라 하고 나머지 지역은 용화산이라 하고 있다. 

 

미륵이나 용화는 모두 미륵신앙과 관련이 있는 명칭으로써, 원래는 용화산이라 하던 것이 미륵사가 지어지면서 그 주변에 있는 산만 미륵산이라 칭한 것이라 보인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미륵사터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제30대 무왕 관련 불탑이다.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미륵삼존을 모시기 위해 창건된 백제 최대의 사찰로, 서원 금당 앞에 있는 이 석탑도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 석탑 중 제일 규모가 크고 오래된 탑이며, 목탑의 구조를 석탑으로 재현하였다. 무너져서 거의 절반 정도만 남은 탑을 2009년 해체·수리하다가 완전한 형태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같이 발견된 탑지에서 왕비가 639년(무왕 40)에 탑을 건립하면서 사리를 봉안했음이 확인되었다.

 

 

 

 

 

 

 

 

서금당의 석탑은 국내에 현존하는 석탑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창건 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진 석탑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되었다. 원래 9층이었으나 미륵사가 폐사된 뒤 원형이 크게 훼손되어 6층까지만 남게 되었고, 일제 강점기인 1915년에 일본인들이 무너진 부분을 콘크리트로 덧씌운 채로 전해졌다. 1998년 구조 안전진단을 시행하여 이듬해에 해체 및 보수를 결정한 뒤 2001년 10월부터 본격적인 해체보수정비 작업을 시작하였다.

 

 

 

 

 

 

 

 

1998년부터 20년에 걸친 복원 작업은 남아 있던 6층까지의 원형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6층 이상은 원래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료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10년 해체 및 발굴조사가 완료되었고, 2013년 11월 본격적인 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석재 조립에 착수하였다. 복원 작업은 최첨단 장비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창건 당시 석탑의 기초를 조사하고 원형 기법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옛 부재 가운데 81%를 재사용하였다. 2017년 12월 기단부터 6층까지의 석재 조립이 완료되었고, 2018년 6월에 복원된 석탑이 공개되었다.

 

 

 

 

 

 

 

익산 미륵산 당간지주와 미륵사지 석탑

 

 

 

 

 

 

 

익산 미륵사지 석탑

 

 

 

 

 

 

 

 

 

익산 미륵사지 석탑

 

 

 

 

 

 

 

 

익산 미륵사지 석탑

 

 

 

 

 

 

 

 

진신사리가 봉안된 미륵사지 석탑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정비 중 2009년 1월 14일 1층 심주석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 되었고 진신사리는 2015년 12월 3일 재봉안 되었습니다. 이곳은 불사리가 봉안된 곳으로 출입을 금지합니다.

 

 

 

 

 

 

 

진신사리가 봉안된 미륵사지 석탑

 

 

 

 

 

 

 

 

익산 미륵사지 동원 구층석탑

 

1992년 복원한 화강석 석탑으로 탑의 높이는 27.8m이다. 동원탑지 발굴로 기단석, 옥개석, 노반석이 출토되면서 복원작업이 이루어졌다

백제 무왕 당시 최대 사찰로 알려진 미륵사는 3탑 3금당 가람배치로 금당(중금당, 동금당, 서금당) 앞에 각각 탑이 세워졌었는데 현재는 서금당 앞의 서탑만 전해진다.

동원 구층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서탑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통해 고증, 복원되었으며, 2층 기단에 9층의 탑신부와 상륜부로 이루어져있다. 지붕돌 모서리에는 풍탁이 달려있다.

 

 

 

 

 

 

 

익산 미륵사지 동원 구층석탑

 

 

 

 

 

 

 

 

익산 미륵사지 동원 구층석탑

 

 

 

 

 

 

 

 

익산 미륵사지 동원 구층석탑

 

 

 

 

 

 

 

 

익산 미륵사지 동원 구층석탑 지붕돌 모서리에는 풍탁이 달려있다.

 

 

 

 

 

 

 

 

익산 미륵사지 동원 구층석탑은 문화재가 아니라 복원품이라 내부에 들어가볼 수 있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동원 구층석탑에서 바라 본 미륵사지 석탑

 

 

 

 

 

 

 

익산 미륵사지 동원 구층석탑에서 바라 본 미륵산

 

 

 

 

 

 

 

 

익산 미륵사지 석등하대석

1999년 4월 23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미륵사지 동원과 중원에 남아 있다. 원래 미륵사지석탑과 금당의 중간에 배치되어 있었고, 석등도 3기였으나, 발굴 조사를 통해 2기만 확인되었다. 이 중 화사석 3개는 국립전주박물관에서 보관하여 전시하고 있다.

높이는 각각 96㎝, 105㎝이다. 윗면에는 8개의 연화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이 연화무늬는 백제 말기의 수막새의 연화무늬와 같은 양식이다. 따라서 이 석등하대석은 한국 석등의 초기 양식임을 알 수 있다.

 

 

 

 

 

 

 

 

익산 미륵사지 서원 금당 터

금당은 절에서 불상을 모신 법당, 대웅전 등의 중심 건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금색의 불상을 모셨다는 설과 건물 내부를 금색으로 칠했다는 설에서 명칭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서원 금당 터는 동원해 금당 터와 미륵사지의 중심에서 서쪽과 동쪽에 대칭으로 위치하고 있다. 

서원 금당 터는 현재 석재들이 대부분 없어진 상태로 이층으로 구성된 기단만 남아있으며, 기단 남쪽과 북쪽에 계단의 흔적이 남아 있다. 1980년대 발굴조사에서 서원과 동원의 금당 터는 기단의 형식과 규모가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서원 금당 터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규모이며, 정면은 5칸 중 중앙의 3칸이 조금 더 넓고 측면은 칸의 폭이 모두 같다. 건물의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은 사각형의 큰 받침석(초반석) 위에 놓여있는데 동원 금당 터도 동일한 방식이다. 주춧돌은 높이가 약 1m 정도로 높게 만들어진 특이한 형태이며. 윗부분에는 다른 석재나 목재를 수평으로 끼워 넣을 수 있는 홈이 있다. 

 

높은 주춧돌로 인해 금당의 바닥에는 빈 공간이 만들어지는데 신라의 문무왕이 용이 되어 드나들었다는 경주 감은사지의 금당 구조와 유사한 점이 있다.

 

 

 

 

 

 

 

 

익산 미륵사지 동원 금당 터 

금당은 불상을 모신 법당으로 사찰의 중심 건물이다. 금당이라는 이름에는 금색의 불상을 모셨다는 데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건물 안을 금색으로 칠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미륵삼존이 나타났던 연못을 메우고 탑과 금당을 3곳에 두었다고 하는데, 발굴 조사에서도 동원, 서원, 중원 즉, 삼원에 각각 금당이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이곳은 동원으로 금당이 있던 곳이며, 삼원의 금당 터 중에서 기단부 석재가 가장 많이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층으로 된 기단의 남쪽과 북쪽에 계단이 있고, 기단 내부에는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초석이 있다. 초석의 높이가 1m 정도로 높아 금당 바닥에 공간이 생기며, 초석 부분에는 다른 석재나 목재를 수평으로 끼워 넣을 수 있는 물이 있다.

 

이 금당 터는 「삼국유사」에서 신라 문무왕이 용이 되어 드나들었다는 경주 감은사 금당 구조와 유사한 점이 있다.

 

 

 

 

 

 

 

 

익산 미륵사지 발굴조사 현장

 

 

 

 

 

 

 

익산 미륵사지 목탑지


사찰에서 탑은 부처님의 신골, 즉 사리를 모시는 곳으로, 불교가 들어온 초기에는 주로 목탑을 세웠다. 미륵사지는 삼원의 가람배치로 중원에는 목탑을 두고, 동원과 서원에는 석탑을 각각 두었다. 목탑지 기단은 잘 다듬어진 돌로 만들어진 이중기단으로, 아래 기단은 면석, 덮개석, 위의 기단은 지대석, 면석, 덮개석을 갖추고 있다.

 

기단은 4면 중앙에 계단이 있으며, 한 변의 길이가 18.5m인 정사각형이다. 목탑지 하부의 기초는 목탑의 기단 면적만큼 메웠던 흙을 다시 깊이 350cm정도까지 파낸 아래서부터 사람 머리 크기의 돌들을 150cm정도 채워 다졌다. 그 위에 마사토와 점질토를 섞어 3~5cm 두께로 층층이 다져올리는 판축을 했다.

 

목탑지 기초부 바닥을 보면 습지의 개흙이 보이고 있어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못을 메우고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굴 조사 당시 기단의 앞에서 출토된 불에 탄 기와들을 통해 목탑은 통일신라 후기 화재에 의해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와 당간석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와 당간석

당간은 사찰에서 행사나 의식을 치를 때 부처의 가르침을 담은 깃발인 당을 달아 두는 길쭉한 깃대이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받쳐 주는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주로 사찰 입구에 세워 그곳이 신성한 공간임을 알렸다. 후대 남회랑 안마당에 약 90m 간격으로 서 있는 당간지주 2기는 크기와 형태, 제작 기법이 서로 같다. 현재 당간은 사라지고 지주만 남아 있는데, 미륵사지 서탑을 해체할 때 탑 안에서 나온 석재가 당간 형태임을 보아 당간은 돌로 만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주의 높이는 약 4.5m이고, 바깥 면에는 가장자리와 중앙에 띠가 있다. 

 

지주의 안쪽에는 당간을 고정하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 지주 아래에는 기단이 있으며, 기단 각 면에는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익산 미륵사지 연못

불경에서는 극락세계에 칠보로 꾸민 연못이 있어 그 안에는 청정한 물이 가득하고, 아름다운 연꽃이 미묘한 향내를 은은하게 내뿜는다고 한다. 그래서 사찰에서는 극락세계의 상징으로 연못을 만든다. 미륵사지 입구에서 중앙으로 난 길의 양옆 연못 2곳은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당간지주, 남회랑과 함께 만들어졌다. 동쪽에 있는 연못의 너비는 동서 51m, 남북 48m이고, 서쪽 연못은 동서 54.5m, 남북 41m이다. 두 연못 사이의 길은 너비가 50.5m이고 남희랑 중앙 계단까지 이어진다. 서쪽 연못가에서 미륵사 터를 바라보면 연못에 미륵산과 석탑이 비치는데, 폐허가 되기 전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미륵사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익산 미륵사지 회랑 터 

회량은 중요한 건물이나 공간을 둘러싼 복도 형태의 긴 건물로, 신성한 공간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구실을 한다.

 

미륵사는 동원.중원, 서원 3곳의 원마다 과 금당이 있는 삼원 구조이며, 다른 사찰과는 달리 동원, 종원, 서원을 모두 예워싸는 회량이 있다. 삼원 남쪽의 자 형태의 건물터에는 각 원의 금당과 의 중심축 위치에 3개의 계단과 중문이 있다.

 

남화량의 길이는 172m이고, 종원을 둘러싼 동화량과 서회랑은 82.5m, 북회랑은 73,2m이다. 동원의 동화량과 서원의 서회량의 길이는 각각 77.1m이며, 동원과 서원의 복회량은 각각 14.7m이다. 각 회량의 목은 6.7m 내외이다. 중원의 중문 크기는 동서 19.2m, 남북 8.4m로 추정하며, 동원과 서원의 중문 크기는 각각 동서 12.3m. 남북 7.9m이다.

 

 

 

 

 

 

 

 

익산 미륵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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