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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용강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


내용


면적 49만7088㎡. 사적 제312호. 지정면적 497,090㎡. 나지막한 야산협곡의 분지에 위치한 운주사지에는 반경 200m 범위내에 석불 70여 구와 석탑 12기가 유존하고 있다.


통일신라 말 도선(道詵)이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千佛千塔)을 쌓았다고 전하나 이에 대한 확실한 사료는 없고,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 능성현조(綾城縣條)에 “雲住寺在千佛山寺之左右山背石佛塔各一千……(운주사재천불산사지좌우산배석불탑각1천……)”이라는 내용이 보인다.


또, 1632년(인조 10)의 ≪능주목지 綾州牧誌≫에도 이와 비슷한 기록이 보이고 있는데, 후미의 “雲住寺今廢(운주사금폐)”라는 기록으로 보아 1632년 이전에 한 차례 폐찰되었던 것 같다.


1984년 발굴조사 때 새로운 건물지와 각종 기와조각과 자기조각 등이 출토되어 운주사의 창건은 물론 천불천탑 조성을 규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때의 출토유물은 고려초의 햇무리굽청자조각(2개)·순청자접시조각(20여개), 그리고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이다.


이 유물의 연대가 10, 11세기경으로 추정되어, 운주사의 창건이 고려 초기로 소급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또 고려 중기의 상감청자 약 100여 조각, 14, 15세기경의 청자류 350여 조각이 출토됨으로써 운주사가 고려 중기에서 말기까지 매우 번창하였던 사찰이었음을 입증하였다.


특히, 홍치8년명(弘治八年銘, 1495)의 기와조각 출토는 운주사가 15세기 말에 크게 중창되었다가 그 뒤 정유재란으로 인하여 폐찰되었음을 알게 하였다.


운주사가 고려 중기 이후 번창하였음은 현존 유적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곳에 산재한 석불·석탑이 12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데다 고려시대의 지방적인 특색이 가장 잘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주사지는 불교미술사 또는 불교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예로 평가되고 있다.



화순 운주사지 일원 / 석탑

참고문헌

雲住寺(全南大學校博物館, 1984)

文化財圖錄(全羅南道, 1987)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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