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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타워브리지와 빅벤


타워브리지


1886년 공사가 시작되어 8년만인 1894년에 완성된 영국 템즈강의 명물 ‘타워브리지’. 

그 쓰임새는 단순한 일반 대교(大橋)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수려한 모습을 자랑한다. 



빅벤 


국회의사당 시계탑인 ‘빅벤’은 대영제국의 영광이 가장 화려하게 꽃피던 빅토리아 여왕시대인 1856년에 완공되었다.

‘빅벤’이라는 이름은 ‘큰 종’이라는 뜻에서 크다의 ‘Big’과 시계탑의 설계자였던 벤자민 홀(Benjamin Hall)의

앞 글자인 ‘Ben’을 합쳐서 만들어졌다. 


이 말은 애초에는 시계탑 안에 있는 거대한 종을 일컬었지만 지금은 그냥 시계탑, 시계, 벨을 통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영국 타워브리지 뒤로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 있는 페트로나스 타워가 보인다.



영국 타워브리지 | 영국 런던


강물 위로 배가 지나가게 되면 수압을 이용해 다리가 들어올려지게 되고 한번 열릴 때 총 3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배가 중요한 교통기관이었던 시절에는 하루에도 40-50회 가량 열렸지만 지금은 일주일에 2-3회 정도에 그치고 있어

운이 닿지 않으면 이런 이색적인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총길이 270m, 총중량 1100톤에 달하는 타워브리지는 대영제국의 힘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에 건립되어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빅토리아풍과 고딕풍이 합쳐진 세련된 멋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 국회의사당 | 영국 런던


영국 국회의사당은 ‘의회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전 세계에 심어놓은 민주주의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국회의사당의 정식이름은 ‘웨스트민스터 사원(The Palace of Westminster)’인데 그 기원은 1066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 북부에 있던 노르만족은 잉글랜드를 침입하여 무력으로 정복했고, 이때 왕이 된 정복왕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

시대인 1090년에 완성됐다. 템즈강을 바라보면서 웅장하게 지어진 이 건물은 1500년대 초반까지 헨리8세의 왕궁으로 사용되어져 왔고

정치인들을 심판하는 법정으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영국 버킹엄 궁전 | 영국 런던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서남쪽에 위치한 버킹엄 궁전은 영국 입헌군주 정치의 출발점이자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1703년 건축되었을 때는 애초 셰필드 공작의 저택으로 이용되어 왔다. 1761년 조지 3세가 이를 구입한 이후

왕실 건물로 편입되었으며 건축가 J. 내시에 의해 개축됐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여러 왕궁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내시는 대리석을 사용해 아치형의 입구를 만듦으로써 인상적인 건물로 변모시켰다. 하지만 조지 3세는 예산을 초과하는 바람에

자리를 박탈당하고 이곳을 사용하지는 못하게 됐다. 


1937년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한 이후 여왕이 상주하는 궁전이 되기 시작했다. 

그 후 계속적인 증개축이 시행되었는데, 1946년 E.블로어, 1913년 A.웨브가 동쪽 옆면을 증개축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페트로나스 타워 , 미국 브루클린 브리지 , 미국 세계무역센터 , 미국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프랑스 파리 에펠탑


프랑스 파리의 만국 박람회장에 위치한 높이 984피트(약320m), 무게 7000톤의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시공자인 프랑스 공학자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의 이름을 따서 ‘에펠탑’으로 불리고 있다. 

1887년부터 약 300여명의 철강기술자가 동원되어 2년 동안 공사를 했으며 오늘날까지 많은 변형을 거쳐왔다. 

이제까지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연평균 6백만명으로 총 2억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파리지앤(파리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각종 행사를 이곳 근처에서 치루고 있을 정도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파리 오페라하우스 | 프랑스 파리


파리의 오페라 거리에 위치한 일명 ‘파리 오페라 하우스’는 1861년 샤를 가르니에의 설계로 공사가 시작되어 14년 후인 1875년에 완공됐다. 

당시 ‘우아한 건물’이라는 컨셉을 내세워 디자인을 공모했으며 171개의 기획안이 경합을 거쳤다.


이 극장은 한번 오페라에 등장하는 출연자들이 무려 400명이 넘을 정도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1,991석의 객석은 제정시대의 양식을 띠고 있으며 천장에는 샤갈의 ‘꿈의 꽃다발’이 그려져 있어 예술적 감흥을 더욱 고조시킨다. 

건물 전체를 대형 그림과 대리석 조각상으로 뒤덮고 있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파리 개선문 | 프랑스 파리 드골 광장


개선문이란 보통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장군과 병사들을 위로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지는 아치 형태의 건축물을 말한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많이 세워져 왔으며 현대의 개선문이라고 한다면 프랑스 파리의 드골 광장에 세워져 있는 ‘에투알 개선문’을 지칭한다. 


1805년 오스터리츠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나폴레옹은 병사들에게 ‘너희들은 개선문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라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06년부터 J.F.샬그랭이 설계한 개선문의 건축이 시작됐다. 그러나 샬그랭이 얼마 있지 않아 사망하게 되고 나폴레옹 

자신도 실각을 했기 때문에 공사는 중단되었고 그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그 후 건축사 페르시에가 제출한 변경안을 토대로 건축이

이어졌고 30년만인 1836년에 겨우 완공됐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나폴레옹 자신도 사망한 이후였다. 


높이 49m, 너비 45m의 에투알 개선문은 고대 로마 개선문의 양식을 따라 지어졌으며 프랑스 근세 고전주의의 걸작으로 꼽힌다. 

근세 고전주의는 ‘조화와 명석함’을 추구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사조로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부활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진

예술의 한 경향이다.



프랑스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로 꼽히며 장장 20만점이라는 대량의 소장품 덕에 관람 기간만 일주일이 넘게 걸릴 정도라고 한다. 


원래 루브르 박물관은 1190년 필리프 오귀스트가 바이킹의 침략으로부터 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군사시설이었지만

1300년대 프랑스 군주였던 샤를르 5세는 이를 저택으로 사용했다. 그 후 프랑수와 1세는 군사적인 냄새가 나는 권위적인 외형을

르네상스 양식으로 새롭게 변형시켰고 이후 300년에 걸쳐 궁전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 시기에 루브르 궁전은 끊임없는 개축과

증축을 한 뒤에 결국 오늘날과 비슷한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샤크레케르 대성당 | 파리 몽마르뜨 언덕


1876년에 건립이 시작되어 1919년에 완공된 샤크레케르 대성당은 건축가 우트리오(Utrillo)와 몽마르뜨에 살고 있던 1백여명에 

가까운 예술가들이 합심해서 지은 성당이다. 


파리의 대주교 기베르에 의해서 건축이 추진된 이 성당은 당시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국민의 사기를 높이고

카톨릭의 숭고한 신앙심을 일깨울 목적으로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장소에 지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프랑스인들은 자국 예술의 위대성을

자랑해 자존심을 회복한 것은 물론이고 신앙심을 더욱 고취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건축비는 신자들에 의해서 충당되었는데, 그들의 기부금만 4천만 프랑에 달했다. 

당시 모금은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하기 시작했으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 프랑스 샤르트르


파리에서 서남쪽으로 8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샤르트르(Chartres)라는 지역은 프랑스의 곡창지대인 보스 지방의 수도다. 

이곳에는 ‘서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역사적 유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샤르트르 성당’이 있다. 


흔히 ‘프랑스 고딕양식의 총체’라고 불려지는 이 성당은 1194년 대화재로 전소되어 버린 바실리카 대성당의 토대에 신축되기 시작해

1220년에 완공되었다. 길이 130m, 높이 37m의 아치와 105m의 높은 탑, 그리고 약 2000평방미터에 걸쳐 있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색유리 조각으로 만든 그림이자 창문)가 성당의 위엄과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프랑스 노트르담 사원 | 프랑스 파리


현재 노트르담 사원이 위치한 곳은 원래 고대 로마인들이 제사를 지내는 장소였다. 그후 4세기경에 카톨릭이 국교로 지정되면서 이곳에

성당이 만들어졌고 1163년 모리스 드 쉴리(Maurice de Sully)파리 주교에 의하여 본격적인 개축이 시작되면서 길이 130m, 폭 48m, 

높이 35m의 전형적인 고딕양식 건물이 만들어 졌다. 


많은 건축가와 기술자, 예술가들이 참여해 무려 170년 동안 건설됐다. 프랑스혁명 기간 중에 첨탑이 파괴되기도 했고 한때 포도주 창고로

이용되기도 했으나 19세기 비올레르 뒤크(Viollet-le-Duc)에 의해 재건됐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 프랑스 베르사유


프랑스 파리 남서쪽의 베르사유에 위치한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4세에서 16세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왕들의 관저로 쓰였던

‘유럽 궁전의 진수’라고 할만하다. 절대왕정 시대인 당시에 군주는 매일같이 수백명의 귀족들을 불러모아 그들에게 관직과 명예직을

수여하면서 자신의 권력 기반을 확보해 나갔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넓은 공간과 함께 자신의 위엄과 명예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권위 있는 건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약 50년간 전체 길이 680m의 거대한 궁전을 짓기 위해 약 2만명의 인력이 동원되었다. 



프랑스 샹보르 성 | 프랑스 루아르


프랑스 루아르 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샹보르 성은 프랑수와 1세의 제위 시기인 1519년에 착공되어 15년 뒤인 

루이 14세 때에 완공되었다. 


이 성에는 무려 440여개의 방이 있어 그 웅장한 규모면에서 베르사유 궁전과 곧잘 비교되곤 한다. 

총 5,500헥타르의 공간에 32km에 달하는 길고 긴 울타리를 가진 샹보르 성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르네상스식 건물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루아르 계곡의 방대한 산림 속에 위치하고 있어 그 모습이 자연 경관과 더불어 가히 장관을 이루고 있다.



유럽 벨베데레 궁전 | 오스트리아 비엔나


벨베데레 궁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벨베데레’라는 건축 용어부터 이해해야 한다. 

사전적인 의미는 ‘아름다운 경치’이며, 보통 ‘좋은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세운 건축구조물’을 일컫는 말이다. 


구체적인 건축기법으로는 ‘꼭대기에 지붕은 있지만 벽은 한쪽 면이나 여러 면이 트여있는 곳’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건물의 가장 위층에 지어지거나 독립적인 형태를 갖기도 한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실용화되기 시작했지만 야외가 트여있다는 점에서 날씨가 추운 북유럽 지역에서는 건축 장식에 지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벨베데레 궁전은 대표적인 바로크풍의 궁전 건축양식과 정원 형태를 갖추고 있다. 

궁전이 지어진 시기는 1714년 부터 1722년 까지다.



유럽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 | 이탈리아 바티칸 시티


이탈리아 바티칸 시티에 위치한 성베드로 성당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바티칸 시티에는 예로부터 수없이 많은 보물이 존재해 왔는데, 그 중에서도 이 성당은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326년 콘스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세워졌으며 1506년 율리우스 2세의 명령에 의해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이 성당은 카톨릭의 총본산을 대변할만한 사원을 건립하자는 의견에 따라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총동원됐다.

당시 르네상스를 주름잡던 건축가들이 참여해 무려 1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공사를 했고 마침내 1626년 완공되었다. 


특히 사원의 설계는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건축가 부라만테로 부터 시작되었다가 미켈란젤로에게로 이어졌으며, 그의 천부적인 재질과 감각

이 잘 반영되고 있다. 특히 중앙에 솟은 아름다운 돔은 미켈란젤로의 걸작에 속한다. 로마 르네상스 건축의 정점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네로 황제에 의해 순교한 성베드로의 묘지 위에 세워졌다.



유럽 콜로세움 | 이탈리아 로마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콜로세움’은 거대한 투기장이자 오락시설이었다. ‘글라디아토르’라고 불리는 검투사들의 시합과 맹수들의 싸움

등이 선보이던 장소였다. 원래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극장’이다. 


기원후 72년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네로의 황금궁전의 일부인 인공호수가 있던 자리에 착공해 8년 뒤인 80년에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에 의해 완공되었다. 당시 완공을 축하하기 위해 100일 동안 격투 경기가 열렸으며 약 5,000여 마리의 맹수가 도살되기도 했다. 

당시 로마인들은 ‘콜로세움이 멸망할 때 로마도 멸망하며 세계도 멸망할 것이다’라는 말을 함으로써 당시 콜로세움이 자신들에게 주는

자긍심을 표현했다. 


둘레 527m에 직경 188m(짧은 쪽 156m)의 크기를 가진 이 원형극장이 ‘콜로세움’이라는 명칭을 얻은 데에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하나는 ‘거대하다’라는 뜻을 가진 콜로사레(Colossale)에서 유래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고 다른 하나는 근처에 세워진 네로의 조각상을 의미

하는 콜로서스(Colossus)에서 파생됐다는 것이다.



유럽 밀라노 대성당 | 이탈리아 밀라노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밀라노 대성당’은 높이 157m, 너비 92m에 이르는 거대한 고딕양식의 성당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로

통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밀라노라는 도시 자체가 유럽의 동서남북을 잇는 요충지이자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경제 수도’

이기 때문이다. 그런 밀라노가 자랑하는 두 가지가 바로 ‘세계 최첨단 유행’과 ‘밀라노 대성당’이다. 


밀라노 대성당은 3천개가 넘는 거대한 조각군과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수백개의 유리 첨탑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장미창이 유난히 아름다운 것으로 정평이 높다. 첨탑의 경우 굉장히 화려해 보이기는 하지만 일부 통일감이 없고 번잡해

보인다는 점이 흠으로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기존 건축의 개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파격적인 건물이다.



유럽 피사의 사탑 | 이탈리아 중서부


한쪽으로 기울진 모습 때문에 더욱 유명한 ‘피사의 사탑’은 본래 피사 대성당의 부속건물이었다. 

그러니까 피사 대성당은 성당 본건물과 세례당, 그리고 피사의 사탑으로 불려지는 종탑 등 세가지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1174년에 착공되어 1350년에 완성된 피사의 사탑은 중세 도시 국가인 피사가 해전(海戰)에서 사라센 함대를 무찌르고 대승을 거둔 기념으로

세워졌다. 흰색 대리석으로 지어져 있으며 꼭대기의 종루를 포함해 55.8m의 높이와 16m의 지름을 가진 8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게는 1만 4,500톤. 탑 내부에는 나선형으로 된 294개의 계단이 있으며 종루에는 각각 다른 음색과 음계를 지닌 7개의 종이 있다. 

그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지중해에서 발달한 토스카나풍과 중세 기독교 정신의 로마네스크 양식이 합쳐졌다.

이 양식은 매우 대담하면서도 종교적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럽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 | 스페인 바르셀로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기존 건축의 개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파격적인 건물이다. 

마치 거대한 옥수수 4개가 하늘로 치솟은 듯 보인다.


천재 건축가로 알려진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해 1882년부터 착공에 들어간 이 성당은 12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건축되고 있다. 

앞으로도 200년은 더 건축을 할 예정이라고. 


현재 완성된 것은 지하 예배당과 중앙 지하실 정도이다. 완성된 도면에 따르면 높이 100m 정도의 탑이 12개가 들어서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를 상징한다. 이외에 중앙에 세워지는 170m의 가장 큰 탑은 예수를 상징하고 탑과 탑을 이어주는 돔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고 있다. 또 별도의 돔 4개는 4명의 복음 성인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성스러운 가족’

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 카이저빌헬름 교회 (좌측) | 독일 베를린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 위치한 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1891년 건축이 시작되어 1895년에 완공되었다. 


당시 통치자였던 카이저 빌헬름 2세는 1889년에 사망한 아버지인 빌헬름 1세를 기념하기 위해서 이 교회를 지었다고 한다. 

프란츠 슈베크텐(Franz Schwechten)이 설계한 이 교회는 63m의 높이이며, 독일이 동서로 분단되어 있었을 때는 서베를린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빌헬름 2세는 20년 동안 재직하면서 무려 30개가 넘는 대형 교회를 짓도록 했는데, 이는 신자를 수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만 도시의

미관 때문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당시에 교회는 늘 텅텅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었다. 특히 카이저 빌헬름 교회가 지어진 곳은 교통의 요충지

였기 때문에 건축을 추진하던 당시 신하들이 많은 반대를 했지만 황제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또 교회 옆에는 광장을 지어 자신의 처인 황후의 이름을 따 ‘아우구스트 빅토리아’로 명명했다. 교회의 건축양식은 고딕풍이 변형된 ‘네오고딕’ 형식이다.



유럽 노이슈반슈타인 성 | 독일 바이에른주(州)


노이슈반슈타인성은 세계에서 가장 이국적이면서도 아름답고 또한 슬프면서도 미스테리한 사연까지 깃들여져 있는 신비의 성이다. 

미국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공원인 디즈니랜드의 디즈니성이 바로 이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하니 그 동화같은 낭만적

아름다움을 상상해볼 수 있다. 


독일 바이에른에 위치한 이 성은 당시 왕이었던 루드비히 2세에 의해 1869년부터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왕은 17년 뒤인 1886년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이후 공사는 중단된 채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바그너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루드비히 2세는 오페라 ‘로엔그린’ 중 

백조의 전설이라는 것에 모티브를 얻어 성 전체를 디자인했고 그래서 ‘백조의 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성의 외벽은 흰색과 베이지색의 대리석을 사용했고 날씬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갖추고 있다. 밝으면서도 중후하고 낭만적이면서도 진지한 

모습에 오늘날에도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지붕 위의 비대칭형 원추들이 예술성을 더하고 있다.



유럽 아크로폴리스 | 그리스 아테네


‘고대 그리스 문화의 대표적인 걸작’이라고 불리는 ‘아크로폴리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 유산 제 1호다. 

고대 그리스는 도시 국가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각 도시 중심지에는 약간 높은 언덕이 있었는데, 이를 ‘폴리스’라고 불렀다.


이곳은 주변 지역을 감시하기에 알맞을 정도로 높았기에 도시를 방어하기 위한 거점이 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 국가 자체가

폴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리웠고 원래의 폴리스는 ‘높은’이라는 의미의 ‘아크로(akros)’라는 단어가 붙어 아크로폴리스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아크로폴리스는 각 도시 국가에 있는 언덕과 그 언덕에 위치한 방어벽과 신전을 모두 가르키는데, 오늘날에는 대표적으로 그리스

아티케 지방의 아테네에 있는 그것을 지칭한다. 또 아크로폴리스에는 수호신을 모시는 신전을 짓고 여러 신들의 상징물을 만들어 당시 신앙

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붉은광장 | 러시아 모스크바


흔히 ‘모스크바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붉은 광장’은 길이 695m, 폭 130m에 넓이 7만3,000평방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러시아어로는 ‘끄라스나야 쁠로샤지’라고 불리는데 원래는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곳 주변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붉은 색을

찾아볼 수 없기에 많은 사람들이 ‘붉은 광장’의 유래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유력한 해석이 있다. 하나는 이곳에서 혁명기념일과 메이데이등 주요 행사가 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붉은색 현수막

을 들고 나왔고 또 인근 건물에도 이 붉은 현수막이 내걸렸기에 그때부터 붉은 광장으로 불렸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는 ‘끄라스나야’라는 말 

자체가 ‘중요한’, ‘붉은’라는 의미도 함께 담겨져 있는데, 이곳이 점차 모스크바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되면서 ‘붉은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핫셉수트 여왕의 신전 | 이집트 테베의 서쪽 다이르 알 바흐리



핫셉수트 여왕은 이집트 왕조에서 보기 드문 여왕으로 제 18왕조의 5대왕이다. 그녀는 투트모세 1세의 장녀로, 이복남매인 투트모세 2세의

왕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서출의 조카 투트모세 3세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카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여왕은 정통왕위 계승권을 주장, 22년간 공동통치를 하였다. 


사진 우측에는 아부심벨 대신전이 보인다.



핫셉수트 여왕의 신전 | 이집트 테베의 서쪽 다이르 알 바흐리



핫셉수트 여왕은 이집트 왕조에서 보기 드문 여왕으로 제 18왕조의 5대왕이다. 그녀는 투트모세 1세의 장녀로, 이복남매인 투트모세 2세의

왕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서출의 조카 투트모세 3세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카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여왕은 정통왕위 계승권을 주장, 22년간 공동통치를 하였다. 


사진 우측에는 아부심벨 대신전이 보인다.스핑크스


스핑크스란 고대 이집트 등지에서 신전이나 무덤의 입구에 석상으로 만들어 세운 무덤의 수호신을 말한다. 

이는 제단으로도 사용되었으며, 혹자는 스핑크스의 밑에 도량을 만들어 물이 빠져 나갈 수 있는 구조로 만든 것을 놓고 홍수를 대비해서

세운 건축물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스핑크스는 그 발상지인 이집트에만도 수천 개가 산재해 있으며, 시리아 페니키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등지에도 전파되었다. 

다만 이집트 기제에 있는 ‘카프라왕의 피라미드’에 딸린 스핑크스가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를 가리켜 ‘대 스핑크스’라고

하며 오늘날 모든 스핑크스의 대표적 상징물로 꼽히고 있다. 대 스핑크스는 카프라왕의 피라미드와 하안신전 옆에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멘카우라왕의 피라미드 (사진 우측) | 이집트 기제


‘제3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는 기제에 있는 3대 피라미드 가운데 제일 왼쪽에 위치해 있으며 크기는 가장 작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제1, 2 피라미드인 ‘쿠푸왕의 피라미드’와 ‘카프라왕의 피라미드’의 절반 정도 크기이다. 


멘카우레왕 피라미드는 기원전 2550년경 이집트 제 4왕조때 쿠푸왕의 피라미드와 제작 시기가 비슷하거나 같다. 

이 피라미드의 높이는 65.5m이고, 길이는 105m이다.



카프라왕의 피라미드 (사진 정면)


이집트 기제에 있는 ‘카프라왕의 피라미드’는 ‘쿠푸왕의 피라미드’와 ‘멘카우라왕의 피라미드’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나란히 서 있는 이 세 개의 피라미드를 가리켜 ‘기제의 3대 피라미드’라고 하며, 순서대로 제1, 2, 3 피라미드라 불린다. 

따라서 가운데에 있는 카프라왕의 피라미드는 일반적으로 ‘제2 피라미드’로 통한다. 스핑크스가 바로 여기에 위치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과 사자의 몸통을 하고 있는 이 스핑크스의 주인공은 제 2피라미드의 주인 카프라왕의 얼굴을 본 따 만들었다고 하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으나 신빙성은 다소 떨어진다. 



쿠푸왕의 피라미드 (사진 우측)


세계 7대 불가사의중의 하나인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의 국왕과 왕비 등 왕족의 무덤이었다. 

현재 약 80여개의 피라미드가 남아 있는 가운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쿠푸왕의 피라미드’이다. 

가장 거대한 이 피라미드를 가리켜 ‘대 피라미드’ 또는 ‘제1 피라미드’라고도 부른다. 


쿠푸왕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남서쪽 15km에 위치한 기제에 최대의 피라미드를 건설하였다. 높이만 146.5m(현재 137 m)이고, 밑변도

230m에 이른다. 평균 2.5t의 돌을 무려 230만개나 쌓아올렸다. 이러한 대 건설 사업에는 최소한 10만명의 노예가 석 달씩 교대로 해서 10년

이 걸렸고, 돌을 높게 쌓아 올리는데도 20년 이상 걸렸다고 한다 .



서아시아 페트라 | 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서남쪽


영국의 시인 딘 버존(Dean Burgeon)이 ‘영원한 시간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빛 붉은 도시’라고 예찬한 페트라는, 실제로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고대의 신비로운 도시이다. 페트라는 나바테안(Nabataeran)이라 불리는 고대 유목민족이 서부 아라비아에서 이주해와 

기원전 6세기에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 


사막 한가운데서 암석 지대를 발견한 이들이 그곳에 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이 도시를 원래 나바테안들은 ‘렉무(Rek Mu)\'라 불렀는데, 

그들이 역사에서 사라진 이후 그리스인들이 ‘페트라\'라고 그리스어로 고쳐 불렀지만, ‘렉무’ 역시 ‘페트라’처럼 요르단말로 ‘바위’란 의미를

갖고 있다.




킬리만자로 |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킬리만자로(5,895m)는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부근에 위치한 아프리카의 최고봉이자 세계 최고의 화산이기도 하다.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 혹은 ‘하얀 산’이란 뜻의 킬리만자로는 적도 부근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문자 그대로 정상이 항상 만년설로 덮여

있다. 


1848년 독일인 선교사 레프만(J. Rebman)과 크라프(L. Krap)가 이 산의 모양을 알아냈다고 하는데, 그 이후 1889년 역시 독일인인

지리학자 한스 마이어(H. Mayer)가 최초로 키보(Kibo)봉 등정에 성공했다. 


킬리만자로의 중심부에는 키보봉 외에 마웬지봉(Mawenzi), 시라봉(Shira) 등 3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시라봉은 격렬

한 화산 폭발로 정상이 내려앉았고 이후의 침식 작용으로 더욱 깎여져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로 오래된 마웬지봉의 

정상 역시 침식 작용이 심해 깎아지른 벼랑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여러 차례의 화산 폭발로 가장 늦게 형성된 키로봉의 정상은 칼데라로서

가운데가 움푹 파인 분지 모양을 하고 있다. 직경이 2km에 달하는 이 칼데라에서 폭발이 계속해서 일어나 제 2의 화산추가 형성됐는데, 

그 분화구의 폭이 약 900m이다. 또다시 이 분화구 속에 제 3의 폭발로 생겨난 화산재 언덕이 있다.



페즈 메디나 | 모로코의 북쪽 지역


메디나(Medina)는 ‘도시’란 뜻으로, 모로코가 프랑스에 의해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도시적인 삶의 중심지를 의미했다. 

마치 미로와 같이 복잡한 골목길과 노천 시장들, 그리고 공동체의 공간들로 구성된 메디나에는 모로코 특유의 독특한 냄새가 배어 있다. 


모로코의 메디나 가운데서, 현재 약 백만 명의 주민들이 살고있는 페즈 메디나는 역사적인 가치가 풍부한 종교와 문화, 예술, 그리고 상업의

중심지다. 뛰어난 건축적 면모와 함께, 모로코에서 가장 경이로운 메디나로 알려진 이곳은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중세

도시를 대표하며 스페인-아랍 문명의 진수를 이루고 있다.


중세의 고혹적이고 독특한 도시 구조를 거의 변형 없이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는 페즈는 그 도시 전제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페즈 메디나 내부



이맘모스크 | 이란의 옛 수도 에스파한(Esfahan)


이맘 사원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낙쉐자한 광장(Naqshe Jahan, 현재는 이맘 광장으로 불림) 남쪽에 세워진 이란을 대표

하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예전엔 ‘왕의 사원'이라고 불려졌다 하는데, 카바(Kaba), 즉 메카(Mecca)를 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교하고 화려한 타일 모자이크와, 다양한 모티프, 아름답고 이국적인 글씨 문양 등의 장식과 함께 완벽한 색상의 사용으로 유명

하다. 건물의 웅장한 정문을 42m 높이의 터키식 첨탑이 양쪽에서 보좌하고 있다. 입구의 천장은 이란 특유의 아름다운 종유석들로 장식돼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모스크의 문들은 금과 은의 층으로 덮여져 있고, 나스탈릭(Nastaliq) 글씨체로 쓰여진 몇 개의 시 구절이 장식되어 있다. 

통로를 통해 사원 안으로 들어가면 네 개의 이반(ivan)과 아카이드를 만나게 된다. 모든 벽들은 역시 7가지 색상의 모자이크로 덮여있다.


그리고 52m가 되는 높은 돔이 세워져 있는데, 그 원개는 무려 12m나 떨어진 두 층의 덮개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돔 중앙 아래

에서 매우 신기하고 아름다운 에코를 자아낸다.



성소피아 사원 | 터키의 이스탄불


‘하나님의 지혜’란 뜻의 성 소피아 사원은 사실 4세기에 이미 그리스도교를 최초로 공인했던 콘스탄티누스(Konstantinos) 황제와 그 후계자

였던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에 의해 두 번이나 건설되었지만 두 번 모두 반란에 의해 파손되었다. 그것을 유스티니아누스

(Iustinianus) 황제가 새로운 설계에 근거하여 애초의 사원보다 큰 규모로 재건한 것이 오늘날 남아있는 성 소피아 사원이다. 


수학자이자 건축가였던 안테미우스와 이시도루스가 설계를 맡아 로마와 아테네 같은 고대 도시들로부터 가져온 기둥과 대리석, 그리고

화려한 돌들을 건축에 사용했다. 약 100여명의 감독관 아래 1만 여명의 인력이 동원되어 당시로선 꽤 단기간인 5년 10개월만에 완성되었다. 

537년 12월에 거행된 헌당식에서 건물의 웅장함에 감동한 황제가 “오! 솔로몬이여, 나는 그대를 이겼도다”라고 외치며 경건한 기도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내랑과 외랑을 합친 총 면적이 7,570㎡이며, 안쪽 깊이 77m, 너비 71.7m의 거의 정사각형의 십자가형 플랜에 돔을 덮은 바실리카 양식을

하고 있다. 돔은 그 지름이 77m이고 지상으로부터 56m의 높이에 씌워졌는데, 그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 4개의 큰 지주와 대형 아치를 설치

했다. 40개의 창문들은 돔을 띠 모양으로 두르고 있어 실내의 조명을 밝게 해주면서 동시에 돔 자체의 비중을 경감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테오티와칸 (사진 좌측) | 멕시코 시티의 북동쪽 50km


테오티와칸은 멕시코의 가장 신비로운 문화에 속한다. 그 이유는 스페인의 침공 이전에 이미 이곳을 살던 사람들이 사라져버렸고, 

그들은 자신의 문화에 대한 어떤 자료도 남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근거는 없으나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후 650년 사이 존재했다고 여겨지는 테오티와칸은 중앙 아메리카 문명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문화를 이룩했다고 한다. 아메리카 최초의 메트로폴리탄을 형성했었고, 문명의 전성기에 그 인구가 12만 5천 가량에 

달했지만 7세기 중반 갑자기 폐허가 되고 말았다. 


약 23.5㎢의 땅에 펼쳐진 테오티와칸 유적은 격자형으로 설계된 계획 도시로 2천여 개의 구조물들을 갖추고 있다. 특히 60m가 넘는 피라미드

가 압도적인데, 이 도시의 웅장함으로 인해 후대인들은 이 유적을 ‘신들의 도시’라 불렀다고 한다.



치첸이트사 (사진 우측) | 멕시코 유카탄(Yucatan)반도 메리다


치첸이트사는 메리다에서 약 120km 떨어진 곳에 남아있는 마야 문명의 유적지로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된다. 


학설마다 그 연대 구분이 일치하고 있지 않지만 그 역사는 대체로 기원후 약 7세기부터 9세기 사이 마야인들에 의해 형성된 ‘고전적 마야’ 

시기와 그 이후부터 14세기 사이의 ‘마야-톨텍(Maya-Toltec)’ 시기로 나뉠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마야인들은 기원 후 6세기 중반 경 치첸

(Chichen은 마야어로 ‘우물의 입구’이란 뜻)의 두 우물(‘신성한 우물’과 ‘세속적인 우물’) 근처에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다른 대부분의 마야 문명의 중심지처럼, 치첸이트사 역시 종교적인 의식을 위한 장소였다. 


그러다 10세기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치첸이트사는 한동안 버려졌다가 11세기초 다시 재건되어 마야 제국의 종교 중심지로 번성했다고 한다.



로도스 거상 | 그리스의 지중해 로드(Rhodes) 섬


기원전 408년 로드를 비롯한 4개의 도시가 로드를 수도로 하는 하나의 국가를 만들고자 연합했었다. 로드는 상업적으로 풍요로운 도시였고,

주 동맹국이었던 이집트의 프톨레미 1세(Ptolemy I Soter)와도 경제적으로 견고한 관계를 유지했다. 기원전 305년 프톨레미와 적대적이었던

마세도니아의(Macedonia) 안티고니스(Antigonids)는 로드와 이집트의 동맹을 깨려는 의도로 로드를 공격하게 된다. 


하지만 실패로 끝나고, 기원전 304년 평화조약이 채결됨에 따라 안타고니스인들은 값비싼 전쟁 장비들을 내버려둔 채 그곳을 떠나야했다.

로드인들은 그들의 단결을 자축하기 위해서 그 장비들을 팔아 엄청난 규모로 태양의 신인 헬리오스(Helios) 조각상을 세웠다고 한다.



마추피추 (사진 좌측) | 페루의 안데스 산맥


케추아어로 ‘늙은 봉우리’란 뜻의 마추픽추는 옛 페루의 수도 쿠스코(Cuzco)에서 탄생한 잉카제국이 역사 속에서 사라져갔던 잉카문명 최후

의 유적지이다. 안데스 산맥의 해발 2,350m 위치한 마추픽추는 아마존강의 원류인 우르밤바 강 위의 가파른 절벽에 건설되어 있어 산 아래에

서는 도저히 그 정체를 확인할 수가 없다. 


약 1,200명 가량의 잉카인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마추픽추는 커다란 층계와 높은 방호벽, 그리고 수로가 크게 북부와 남부 두 구역

을 구분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농업지구가 있고 북쪽은 도시구역이다. 도시구역은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태양신을 숭배하기 위한 

사원이나 왕궁, 탑 그리고 귀족계급을 위한 권위적이고 종교적인 건물이 주로 세워진 반면, 동쪽은 일반인을 위한 주거지로 계획되었다. 

이 외에도 죄수들을 따로 수용했던 감옥이나 피라미드, 그리고 농사를 짓는 데 사용했을 태양시계 같은 유적들이 남아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 호주 시드니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내세울만한 음악 공연장이 없었던 점을 고려해서, 1954년 뉴사우스웨일즈(New South Wales) 주정부에 의해 본격

적으로 국가를 대표할만한 건축물을 세우자는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되었다. 


그후, 1957년 전세계로부터 국제건축현상공모에 제출된 233개의 설계안 가운데, 덴마크의 건축가 엇존이 당선되었고, 그해 건축이 시작되어 

14년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완성되었다. 조개 껍질을 연상시키는 오페라 하우스는 오늘날 시드니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현상 공모에서도 기존의 현대건축물 개념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새로운 형태로 주목을 끌었는데, 건축가는 어느 날 자신의 부인이 정성껏

깎아 놓은 접시 위의 오렌지 모양에서 그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국제연합빌딩,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그랜드 센트럴 스테이션, 세계무역센터, 크라이슬러 빌딩, 록펠러 센터, 페트로나스 타워 등이 보인다.



미국 국회 의사당 (사진 좌측) | 워싱턴 D.C.


미국은 국회 의사당은 ‘캐피톨(The Capitol)’이라고도 불린다. 미국 수도인 워싱턴D.C.의 캐피톨 언덕에 있는 국회 의사당은 높이 94m, 

길이 약 250m의 큰 건물이다. 상원과 하원이 함께 쓰고, 중앙에 큰 홀이 있다. 


해마다 수백만 명이 찾는 워싱턴D.C.의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명소 가운데 하나로 현대 건축의 백미로도 꼽힌다. 국회 의사당을 짓기 시작한

이후 완성될 때까지 여러 차례의 화재가 발생하여 수차례의 개축과 증축을 거쳐 1861년에서야 현재의 모양으로 완성되었다.




워싱턴 기념비 | 워싱턴 D.C.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념하여 워싱턴 D. C.에 세운 오벨리스크(obelisk, 방첨탑(方尖塔)). 오벨리스크는 원래 고대 이집트의

사원 입구에 세워진 한쌍의 커다란 뾰족 기둥을 지칭한다. 그런데 오늘날에 세워진 오벨리스크로는 워싱턴 기념비를 들 수 있는데, 기념비

위로 올라갈수록 그 모양이 뾰족하기 때문이다. 


워싱턴 국립추모협회(1838년 창립)가 건립을 추진한 이 기념비는 1848년~1884년에 국민들의 기부금과 연방 예산으로 건축비를 충당했다. 

1848년 착공했으나, 남북 전쟁과 잇따른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885년에서야 완공됐다. 


로버트 밀스(Robert Mills, 1781~1855년)의 설계를 토대로 하여 메릴랜드산(産) 대리석으로 표면을 입힌 이 구조물은 16.8㎡의 바닥 넓이와 

높이 169.3m, 무게 약 9만 1,000t에 이르는 화강암 오벨리스크이다



파리 에펠탑 (사진 좌측)



자유의 여신상 (사진 우측)


미국 뉴욕 항 어퍼 만 리버티 섬에 있는 거대한 조각상이다. 

공식 이름은 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 (‘세계를 밝히는 자유’). 


미국과 프랑스 국민들 간의 친목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받침대를 포함해 전체 높이가 92m이고 높이 치켜든 오른손에 횃불을 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1776년 7월 4일이라는 날짜가 새겨져 있는 자유의 선언을 상징하는 서판을 들고 있다. 발코니까지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며 

거기에서부터 전망대인 머리부분까지는 나선형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타임스퀘어 | 미국 뉴욕시 맨해튼


미국 뉴욕시 맨해튼 중심부에 있는 번화가로 브로드웨이, 7번가, 42번가가 교차하는 곳에 형성되었으며 초기에는 롱 에이커 스퀘어로

알려졌으나, 1903년에 뉴욕타임스가 이곳으로 이전해오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19세기에는 말 거래업자, 마굿간, 마차 등으로 붐비던 곳이었는데, 1899년 오스카 헤머슈타인이 이곳에 최초로 극장을 세우면서 브로드웨이 

공연문화가 시작되었다. 타임스스퀘어와 인근 지역은 공연장, 극장, 상점, 뉴스 가판대, 술집, 음식점 등이 집중되어 있는 미국에서 가장

번화하고 분주한 유흥지역으로서 미국 공연문화의 중심지를 형성했다. 


타임스퀘어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이전인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범죄 소굴이었으며, 성인영화관과 성인용품 상점, 스트립쇼 공연장 등

이 즐비한 곳이었다. 하지만 뉴욕주와 시 당국에서 강력하게 재개발을 추진, 오늘날과 같이 많은 새로운 공연장, 호텔, 음식점, 대규모 상점

들이 들어서면서 재정비됐다.



뉴욕항 


뉴욕은 미국의 여러 항구 도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뉴욕항이 세계적으로도 대량의 수출입 화물이 드나드는 대무역

항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뉴욕항은 뉴욕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맨하턴에 위치해 있으며, 대서양 항로의 서쪽 끝에 있기 때문에 유럽과의 연결 통로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브루클린 브리지


브루클린 브리지는 뉴욕시의 브루클린에서 맨해튼 내륙까지 잇는 현수교이다. 19세기 토목공사의 훌륭한 성과품인 브루클린 다리는 

최초로 강철 케이블을 사용한 교량이다. 



페트로나스 타워 



자금성 | 중국 베이징


자금성’은 중국 명,청 양시대 24명의 황제가 거처하던 중국 봉건왕조의 마지막 왕궁이다. 590년의 역사를 지닌 이 고궁은 중국에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가장 완전한 형태이며, 중국 최대의 박물관이기도 하다. 


이 고궁은 궁실만 모두 9,000여 칸이며, 면적은 72만㎡에 이른다. 애초 설계한 것의 반밖에 못 지었다고 하니 당초 구상이 얼마나 장대하였는

가를 엿볼 수 있다. 왕궁 주위에는 높이가 3m인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왕궁 장벽 밖에는 넓이 52m의 성을 보호하는 하천(호성하)이

둘러서 흐르고 있어 하나의 성채가 완벽한 경계를 이룬 요새를 이루고 있다.



구마모토 성 | 일본 쿠마모토현


일본은 봉건영주에 의한 통치와, 무가(武家) 사회의 상징으로 축성술과 더불어 군사적 목적에 의해 성이 발달하였다. 

망루처럼 높게 솟아있는 것을 ‘천수각’이라고 하며, 이것이 있는 본성의 건물을 ‘혼마루’(本丸)라 하여 성 전체의 중심을 이룬다. 


여기에 성주가 살고, 병기와 많은 군비가 갖추어져 있다. 주변의 아성들은 ‘니노마루’(二の丸), ‘산노마루’(三の丸)라고 하여 역시 수비를

담당했다. 성둘레에 해자를 둘러 적의 공격을 차단하는 요새의 형태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들은 메이지 유신 직후 봉건시대의 잔재로 인식되어 대부분 파괴되었다. ‘히메지성’, ‘오사카성’과 더불어 일본 3대 명성 중

의 하나로 꼽히는 ‘쿠마모토성’ 역시 마찬가지의 운명을 맞았다. 


이 성은 임진왜란때 우리나라를 침공했던 장군 가토 키요마사(加藤淸正)에 의해 1607년 축성된 것이다. 쿠마모토성은 우아한 곡선의 돌담과

함께 자연 지형을 잘 이용한 아름다운 성이면서도 가장 튼튼하게 만들어진 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887년 세이난 전쟁 때 거의

대부분이 소실되어 지금의 모습은 1960년에 복원된 것이다.



페트로나스 타워 |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파리하면 에펠탑을 연상하고, 뉴욕 하면 자유의 여신상을 떠올리듯, 1997년 이후 ‘페트로나스 타워’는 말레이시아의 새로운 국가적 상징이

되었다. 1994년 공사를 시작해 99년 8월 개관한 88층의 쌍둥이 빌딩으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정식 명칭은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이다. 


연면적 6만 5,728평에 지하 6층, 지상 88층, 전체 높이 452m 규모로, 총 2억 3,000만 달러(한화 2,760억 원)의 공사비용이 들었는데,

1973년 완공된 미국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보다 9m가 높다. 


88층부터 4개 층이 하나의 층을 이루는 중층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 4개 층까지 합하면 총 92층이 되는 셈이다. 워낙 고층 건물인 탓에 지상

175m 높이의 41층과 42층에 걸쳐 두 빌딩 사이를 더블덱 스카이브리지로 연결해 양쪽 건물의 흔들림이 없도록 하였다. 지상부터 6층까지는 

콸라룸푸르 최대의 상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물 한쪽에 페트로나스 본사가 있다.



롱먼석굴 | 중국 뤄양(洛陽)


‘윈강석굴’ ‘둔황석굴’과 더불어 중국의 3대 석굴로 꼽히는 ‘룽먼석굴’은 뤄양(洛陽) 남쪽 교외 약 14km 지점에 있다. 석굴이 있는

이췌산(伊闕山)은 이허(伊河)를 사이에 두고 서산과 동산으로 갈라지며, 석회암의 암벽에 다수의 크고 작은 동굴을 뚫어놓았는데, 

동굴 안에는 저마다 엄청난 수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그 수만 해도 동굴 1,352개, 감(龕?불상을 모시는 장) 750개, 석탑 39개, 불상 9만 7,306체, 글자가 새겨진 제기(題記)나 비각이 3,600점이나 

된다. 가위 세계적인 불교예술의 보고인 것이다.


뤄양은 역사의 고도로서, 중국의 역사에서 시안(西安, 옛 장안) 다음으로 많은 왕조가 도읍지로 삼았던 곳이다. 뤄양이 이렇게 번성했던 것

은 중원의 중심지라는 지정학적 위치에 힘입은 바 크다. 중국 대륙 동서남북 어느 곳에서 보더라도 중앙인데다 육운과 수운의 연결점이기도 

했다. 뤄양의 숱한 문화 유산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룽먼석굴인 것이다.



타지마할 |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아그라성


인도의 자랑인 ‘타지마할’은 우타르프라데시주(州) 아그라 교외 아그라성(城) 동쪽 약 2 km, 자무나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만들어진 궁전형식

의 묘묘(墓廟)이다. 


타지마할이란 ‘마할의 왕관’이라는 뜻으로,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5대 황제 샤 자한이 자신의 4번째 왕비 무 무타즈 마할을 위하여

세운 것이다. 원래는 이 여인의 무덤이지만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궁전이라는 의미의 '마할'을 붙였다.



앙코르와트 사원 | 캄보디아 앙코르


‘캄보디아의 영원한 등불’로 불리고 있는 ‘앙코르 와트’는 그 정교한 예술성과 웅장미에 있어서 그리스와 로마의 신전을 능가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앙코르’는 왕도(王都)를 뜻하고 ‘와트’는 사원을 뜻한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과 유명한 왕족이 죽으면 그가 믿던 신(神)과 합일(合一)한다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왕은 자기와 합일하게 될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유적은 앙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바르만 2세가 바라문교(婆羅門敎) 주신(主神)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하여 건립한 바라문교 사원이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불교도가 바라문교의 신상(神像)을 파괴하고 불상을 모시게

됨에 따라 오늘날 불교사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건물?장식?부조 등 모든 면에서 바라문교 사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뉴욕항 아래 거북선과 일본 왜적 함선이 보인다.



황룡사9층 목탑 | 한국 경주시


불교 문화의 융성을 정신적 근간으로 삼아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는 그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는 가운데서도 특히 자랑하는

3대 보물이 있었다. 진평왕의 옥대와 황룡사의 장육존불, 그리고 황룡사 9층목탑이 그것이다. 


황룡사는 불심이 깊은 신라 제 24대 진흥왕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 원래는 궁궐 남쪽인 반월성 동쪽에 새 궁궐을 지으려 했으나, 그 자리에

황룡이 나타나자 이를 심상치 않게 여겨 신궁 공사를 중지하고 황룡을 위해 사찰을 지었다고 한다. 553년(진흥황 14년)에 처음 공사를 시작

한 이래 9층목탑이 완성되는 645년(선덕여왕 14년)까지 무려 92년 간에 걸쳐 건립된 신라 최대의 국찰(國刹)이었다.

아인스월드는 수도권 근거리에 위치한 부천 상동 영상문화단지에서 2003년 11월 15일, 본격적인 에듀파크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34점의 문화유산과 유네스코 10대 문화유산 9점, 현대 7대 불가사의 6점 등 세계 25개국109점의

유명건축물들이 1/25 로 축소, 전시되어 있는 미니어처 테마파크이며 미국 허리우드 영화 제작사인 원더웍스(WonderWorks)사가 직접 제작하였습니다. 

 

 

홈페이지_ www.aiins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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