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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제6경 - 나바위 성지 성당>

나바위는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가 되어 조국에 입국하며 첫발을 디딘 축복의 땅으로 ‘첫 마음의 성지’ 로 불리고 있다.

나바위 성당은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 있으며 ‘화산리’라는 지명은 지금 성당을 담고 있는 산이 절경이어서 송시열이 지어준 화산에서 유래하였다.

성당 이름도 산 이름을 따라 화산성당이라고 불러 오다가 완주군 화산면과 혼동을 피하고자 1989년부터 ‘나바위성당’으로 부르고 있다.

나바위 성당은 국내 천주교의 성지답게 그에 따른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첫 번째 볼거리로는 김대건 신부 순교비를 들 수 있다. 
김대건 신부 순교비는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에 세워졌다. 

두 번째 볼거리로는 망금정을 들 수 있다. 
망금정이란 ‘아름다움을 바란다’라는 뜻으로 1915년 베로모렐 신부가 초대 대구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의 피정을 돕기 위해서 지은 정자이다. 

이 정자는 화산의 끝자락에 있는 넓은 바위인 나바위에 위치하고 있는 데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 망금정이 있는 너럭바위 아래 바위벽면에 마애삼존불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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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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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위 성당 주차장에 주차하고 왼편으로 올라가다 보면 성모상과 화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성당이 보입니다.

한때는 천주교 신자였는데 몇년 전 불교로 옮기고 나서 처음 찾는 성당인 거 같습니다.

 

이 성모상은 1830년 프랑스 파리 뤼드박의 성 빈첸시오 바오로 사랑의 딸 수녀회 모원에서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 수녀에게 발현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다. 

 

경건한 몸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나바위 성지를 천천히 둘러봤습니다.

 

 

 

 

 

 

 

 

피정의 집

 

 

 

 

 

 

 

 

김대건 신부님 

주의 축복이 이 땅에

 

 

 

 

 

 

 

성체조배실

 

 

 

 

 

 

 

 

성체 조배실

이곳은 나바위 성당 초창기(1900년도 초)에 신부님들께서 불을 때던 아궁이가 있던 곳이면서 외국 선교사 신부님들이 직접 빵을 구워 드셨던 사제관 식당 자리입니다. 또한 신부님들께서 직접 제병(성체성사에 사용하기 위해 누룩없이 만든 둥근 빵)을 만드시던 의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나바위 성당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해서 몸소 고난의 길을 걸으며 헌신했던 초대 신부님들의 고귀한 정신이 깃든 곳입니다. 이곳에 성체조배실과 성서 쓰기방을 마련하였습니다.

조용히 침묵 가운데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주님과 일체를 이루며 주님과 만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성체조배실 출입시에는 성체에 대한 최대한 예의를 갖춰야하며 성체 조배실과 조배실 앞에는 침묵과 정숙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나바위 성지역사관(구 나바위 본당 사제관)

​이 건물은 나바위 성당과 함께 1907년에 지어진 사제관이다. 1909년과 1917년 11월 화재로 소실되었다. 1917년 12월 사제관 신축공사를 하여 다시 건립된 사제관은 여러 차례 보수를 하면서 사제관으로 사용하다가 2019년도 6월 29일에 나바위 성지 역사관으로 새롭게 단장을 하게 되었다.

​관람시간 09: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나바위성당은 화산 중턱에 터를 잡고 있다.

 

 

 

 

 

 

 

 

신부 요셉 장약실 공훈 기념비

 

1897년 나바위 본당을 설립한 초대 주임 신부
설립 당시 천주교는 더이상 박해를 받지 않았고 2년 후에는 신앙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었다고 한다.
22년 동안 온몸을 바친 요셉 베르모렐 신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54년 공적비를 세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마태 11,28)

 

 

 

 

 

 

 

 

 

 

 

 

 

 

 

 

나바위 성당

 

 

 

 

 

 

 

 

나바위 치유의 경당

 

 

 

 

 

 

 

 

 

 

 

 

 

 

 

 

나바위 치유의 경당

 

 

 

 

 

 

 

화산 천주교회 표기가 돌기둥에 쓰여 있습니다.

 

 

 

 

 

 

 

 

 

 

 

 

 

 

 

 

 

나바위 성당

 

조선 헌종 11년(1845년)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다불뤼 신부와 함께 황산 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초대주임이었던 베르모넬(장약슬, 요셉) 신부가 중심으로 1906년 건물을 시공하여 1907년 완공하였다. 성당설계는 명동성당 포아넬 신부가 도왔고 공사는 중국인들이 맡았다.

 

나바위 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성인이 처음으로 전도하던 곳이어서 한국 천주교회에서 성지로 지정한 곳이며, 이 건물은 천주교의 한국 유입과 그 발전과정을 볼 때 서구식 성당 건축양식과 우리나라 건축양식을 잘 절충시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초기 성당 건물이다.

 

 

 

 

 

 

 

 

 

 

 

 

 

 

 

 

 

 

 

 

 

 

 

 

 

 

 

 

 

 

 

 

 

 

 

 

 

 

 

 

 

 

 

 

 

 

 

 

 

 

 

 

 

 

 

 

 

 

 

 

 

 

 

 

 

 

 

 

 

 

 

 

 

 

 

 

 

 

 

 

 

 

 

 

 

 

 

나바위 성당 내부는 또 다른 모습이다.

가장 큰 특징은 성당 내부를 좌우로 가르는 나무기둥이다. 남녀 신자들의 좌석을 구분하기 위한 칸막이 역할을 했다고 한다. 특히 창문에는 일반 성당에서 흔히 보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닌 한지가 붙어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신자들이 직접 한지에 그림을 그려 붙이던 전통이 10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성당은 현재 역사관으로 사용 중인 사제관과 함께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318호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중국인들이 공사를 하면서 설계와는 조금 다른 건축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은 8자를 좋아해서 건물 맨 위에 보이는 창문은 원 설계는 사각이었으나 8자로 바뀌었고 기둥의 개수 역시 8개로 당시 중국식 건축물에서 흔히 보이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나바위 치유의 경당

 

1956년에 건축된 이 건물은 당시 진료소와 성당의 강당으로 사용되었다.

 

성 바오로회 수녀님들에 의해 운영되었던 이 진료소는 단순히 약을 나누어 주는 단계를 넘어 소규모 의원에 못지 않은 의료기구를 갖추고 있던 간단한 수술까지 가능했다고 한다.

따라서 당시 진료소는 이 지역의 가난한 주민들에게 의료 혜택을 주는 것은 물론 지역에 복음음 전하는 역할도 함께 하며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육체적 치료와 마음의 치유 또한 주었던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장소라 하겠다.

훗날 보수작업을 통해 1층은 개인 피정의 장소로, 2층은 본당의 강당으로 사용되었고, 2016년에 성지 재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2층 강당을 대대적으로 수리하여 현재의 '치유의 경당'으로 새로 나게 되었다.

 

이로써 건물의 역사와 정신이 다시 살아난 "치유의 경당"은 이제 이곳을 찾는 게이들에게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치유와 위안을 주는 장소로써 그 역할을 하고 있다.

 

 

"ECCE HOMO" 성상과 종탑의 "새벽 닭"

 

경당 입구 오른쪽에 있는 예수님 성상은 대 테레사 성녀가 영적갈등을 겪고 있을 때 회심케 한 성화, "ECCE HOMO"를 성상으로 만든 것이다. 많은 유명 작가들이 그렸던 "ECCE HOMO" 성화는 사형 선고를 받고 기둥에 묶인 예수님을 그린 것으로, 당시 병사들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상처가 난 몸에 가시관과 자주색 옷을 두른 다음 군중 앞에 선 예수님을 두고 빌라도가 "자 이 사람이오!(ECCE HOMO!)"라고 말한(요한 19,5) 내용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따라서 경당에 들어가는 순례객은 예수님의 공로를 통하여 인간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치유를 청하는 것이다.

 

한편 경당의 종탑 위에 세워진 닭의 모양은 베드로의 배신과 회심을 상징하는 "새벽 닭"으로 예수님께서 "네가 새벽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 할 것이다." 라고 하신 말씀과 세 번의 부인 후 자신의 잘못과 나약함을 깨달은 베드로의 눈물어린 회심을 상징한다.

 

"새벽 닭"을 치유의 경당 꼭대기에 세운 곳은 순례객이 경당에 들어가며 나약한 인간이기에 세상에서 범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아여 자신의 죄로 말미암은 상처와 아픔을 자비로우신 예수님께 맡기고 그 안에서 치유를 청하기 위함이다. 

 

 

 

 

 

 

 

 

 

 

 

 

 

 

 

 

치유의 경당

 

경당에 들어 가며
"그분은 몸소 우리의 허역함을 맡아주시고, 우리의 병고를 짐어자셨다"(마태 8,17)
구세주 에수님, 당신 수난의 공로로 이곳을 찾는 이들의 병고를 낫게 하시고 상처받은 영혼에 치유를 허락하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성 뒤블뤼 안토니오 주교님 유해와 동그란 거울 같은 물품에는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 일부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치유의 경당 건물 위 "새벽 닭"

 

 

 

 

 

 

 

 

 

 

 

 

 

 

 

 

 

 

 

 

 

 

 

나바위 성당 뒷편 산책로에는 김대건 신부님, 성모동산, 십자가의 길, 망금정, 성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탑, 성 김대건 신부 일행 착륙지점등 이 있습니다.

 

 

 

 

 

 

 

 

성모 동산과 김대건 신부님 성상

 

 

 

 

 

 

김대건 신부님 성상

 

성 김대건 신부의 고귀한 순교정신과 높은 덕을 기리기 위해 2007년 박 미카엘, 유 안나마리아 부부의 봉헌으로 세웠다. 이 성상은 처음에 다른 곳에 봉헌할 계획으로 제작하였으나 조건이 맞지 않아 세우지 못한 채로 보관하고 있다가 뒤에 나바위 성지와 연계가 되어 이 곳에 세우게 되었다.

 

지금 이 성상은 김대건 신부님 순교기념탑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는데, 바로 나바위 성당이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성지를 찾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여 주고 계신 듯 위엄 있는 모습으로 서 있다.

 

재료는 함열석이며 성상 높이는 4m이고 받침대는 제대모양이다.

 

 

 

 

 

 

 

 

 

망금정과 성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탑

 

 

 

 

 

 

 

 

김대건 신부님 성상이 나바위 성당을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성모동산

성당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평화의 모후’가 자리하고 있으며, 1200명 정도 야외미사를 할 수 있다.

 

 

 

 

 

 

 

 

평화의 모후

전라북도 3대 명당자리 중 하나

 

 

 

 

 

 

 

 

 

 

 

 

 

 

 

십자가의 길

 

1코스 : 성모동산 뒤쪽에서 시작하여 망금정까지 오르며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다.

2코스 : 피정의 집 뒤편에서 시작하여 착지점을 지나는 코스로서 산길이 힘든 사람도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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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Saucet) 신부 묘

 

나바위 본당 2대 주임 소세 신부의 무덤이다.
소세 신부는 부임한지 2년 만에 무릎종양이 악화되어 강경병원에서 수술을 했으나 숨졌다. 그의 주검은 나바위 성당을 바라보며 묻히기를 원하던 소세신부의 유언에 따라 이곳에 묻혔다.

 

 

 

 

 

 

 

 

 

 

 

 

 

 

 

 

십자가의 길 위로 망금정이 보입니다.

 

 

 

 

 

 

 

 

평화의 모후상이 나바위 성당을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과 망금정

 

 

 

 

 

 

 

 

 

 

 

 

 

 

 

 

마애삼존불

 

바위 뒷면에 새겨진 부처와 양옆의 보살은 만선과 무사 안녕을 기원하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삼존불로 세월과 함께 그 옛적 풍경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성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탑

 

화산정상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 나바위 착지 110주년, 시복 30주년, 나바위 성당 건축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탑이다. 상해를 떠나 42일간 바닷길로 입국할 때 타고 온 라파엘호의 크기를 본떠 세운 것이다.


기념탑의 크기는 김대건 신부가 타고 왔던 라파엘호를 본떠 같은 크기로 순교비의 높이 15자, 기념비 6자, 십자가 4자로 제작하였다.

 

 

 

 

 

 

 

 

 

 

 

 

 

 

 

 

망금정과 성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탑

 

 

 

 

 

 

 

 

 

망금정

 

나바위성지는 화산이라는 산에 있다. 산이 아름답다고 해서 우암 송시열이 붙여준 이름이다.

 

화산의 끝자락에 넓은 바위가 있어 나바위라 불린다. 금강의 강변에 자리한 화산은 산 밑 서북쪽으로 물이 닿았고 갈대숲이 우거졌다. 이곳에 나바위 성당이 설립된 후 초대 대구 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가 해마다 5, 6월이면 연례피정을 화산 정상에 있는 나바위에서 가졌다. 

 

개인피정 장소로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조용한 분위기를 감탄하며 피정을 하시는 주교님을 위해 베르모렐 신부는 1915년 정자를 지어드렸다. 이 정자를 드망즈 주교는 망금정이라 이름붙였다.(望錦 바랄 망, 아름다울 금 )


금강을 바라보며 세 분 성직자의 아름다운 영혼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장소이다.

 

 

 

 

 

 

 

 

 

 

 

 

 

 

 

 

 

 

 

 

 

 

 

 

 

 

 

 

 

 

 

 

 

 

 

 

 

 

 

 

 

 

 

 

 

 

 

 

 

 

 

 

 

 

나바위성지 망금정에서 내려다 본 금강

 

 

 

 

 

 

 

 

 

 

 

 

 

 

 

 

 

 

 

 

 

 

 

김대건 소나무

 

 

 

 

 

 

 

 

 

 

 

 

 

 

 

 

 

 

수닭 바위

 

 

 

 

 

 

 

 

 

 

 

 

 

 

 

 

 

 

 

 

 

 

 

 

 

 

십자바위

 

 

 

 

 

 

 

 

 

 

 

 

 

 

 

 

 

 

 

 

 

 

 

 

 

성 김대건 신부 일행 착륙지점

1845년 8월 31일 김대건 신부는 중국 상해에서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그리고 11명의 한국인 신자들과 함께 포교지인 한양을 향하여 라파엘호를 타고 항해하였다. 그러나 폭풍우와 풍랑을 만나 돛 대와 키가 파손되어 표류 하다가 제주도 용수리에 닿았다.

 

그곳에서 배를 정비하여 다시 북상하였으나 반파 상태인 배로는 항해가 불가능하자 계획을 바꾸어 강경에 정박하기로 하였다. 선원 일행 중에 강경 신자들과 강경 일대의 지형을 잘 알고 있던 자가 있었다. 당시 강경포는 조선 3대 어시장 중 하나였으므로 번잡하고, 황산포와 낭청포는 나루가 있어 사람들에게 발각될 위험이 있었다.

그러기에 배들의 오고감이 드물고 상선도 정박하지 않던 아주 작은 황산포 나바위 화산 언저리가 착륙하기 알맞은 곳이었을 것이다.

 

 

 

 

 

 

 

 

 

 

 

 

 

 

 

 

 

라파엘호(The Ship Raphael)

 

라파엘호는 김대건 안드레아 부제가 1845년 4월 30일 제물포에서 상해로 가고, 8월 17일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를 받은 후 8월 31일 조선으로 돌아올 때 탔던 무동력 목선으로, '길을 인도하는 대천사 성 라파엘' 이라는 이름을 붙인 배이다.

 

 

 

 

 

 

 

 

 

 

 

 

 

 

 

 

 

익산 나바위성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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